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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장애인 친구는 ‘장애우’?... “말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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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1-21 10:27 조회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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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그런 상태로 총리가 된다면 이것은 절름발이 총리.” 지난 1월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전한 주호영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지난 2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처분을 내렸다. 인권위는 “(절름발이 발언은 장애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국민의힘은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고 모든 당직자에게 장애인 인권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절름발이는 한쪽 다리가 불편해 걸을 때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관련 표현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하는데, 비슷한 표현으로는 장애자,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정신박약, 불구자 등이 있다.

사실 위 표현 중 상당수가 처음부터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니다. ‘장애자’(障碍者)란 표현은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사용된 호칭이다. 다만 장애자의 ‘자’가 인격을 비하하는 ‘놈 자’(者)이고 일본식 표현이라 ‘인’(人)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청원에 따라 1989년 ‘장애인’으로 개칭됐다.

과거 공공연하게 사용됐던 ‘정신박약’(精神薄弱)도 그 안에 ‘지적장애는 성장·성숙 등 개선의 가능성이 없다는 부정적 관점이 스며있다’는 지적을 받아 1989년 ‘정신지체’(精神遲滯)로 변경됐다. 다만 이후 그 표현도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한다’는 의견에 따라 현재는 ‘지적장애’(知的障礙)로 바꿔 부르고 있다.

신체 특정 부위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불구자’(不具者)란 용어도 1980년 이전까지 폭넓게 사용됐으나 ‘불완전한 존재’란 의미로 인해 지금은 ‘장애인’(신체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변경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지금은 지양해야 할 표현으로 간주되지만, 과거에는 공공연하게 통용됐던 표현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절름발이(신체장애인), 벙어리(언어장애인), 장님(시각장애인), 문둥병(한센병) 등의 표현은 장애의 직접 묘사로 의미 전달력이 뛰어나 과거 관용적 표현으로 널리 사용됐다. ‘벙어리 냉가슴’ ‘꿀먹은 벙어리’ ‘눈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등의 속담에서도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9.604개의 속담 중 257개(2.7%)에 달한다. 속담에 쓰일 만큼 일상적으로 널리 사용됐다는 말이다.

이런 일상성은 사회가 진보하는 가운데 의사전달의 ‘용이성’보다 장애인의 인격을 고려한 ‘적합성’이 중시되고 그에 따라 기존 ‘차별 용어’의 순화 작업이 이뤄지는 속에서도 문제가 되는 표현을 완전히 ‘금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앞서 인권위 역시 「장애 비하 표현에 대한 의견표명」 자료를 통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와 장애 관련 속담이나 관용구의 사용이 무조건 장애인을 비하하는 차별적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나아가 언어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과 경험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표현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일상 언어생활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 될 수 있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언론과 공인, 공문서 등에 한해서는 차별과 편견이 배제된 언어 사용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장애인 인권을 존중하는 언어 발전이 제자리걸음인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많은 이가 장애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그런 선의와 실제로 장애인에게 전달되는 마음이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건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배려의 언어가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친근하게 표현하기 위해 ‘장애우’(障礙友)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상황에 따라 장애인에게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올바른 호칭은 ‘직장인’ ‘출판인’ 등과 같이 타인은 물론 자신이 자신을 가리킬 때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친구’(友)의 의미를 지닌 장애우 표현은 장애인에겐 사용 권한이 없는, 비장애인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수 없어 장애인의 주체성을 저해하는 표현으로 간주된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봉순이 언니』에서 소년은 아픈 말에게 찬물이 치명적이란 사실을 모르고 지극정성으로 (자신이 말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인) 냉수를 먹인다. 이후 말의 상태가 악화되자 “말을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라고 항변하고 그런 소년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한단다.” 장애인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알려면 먼저 언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책 『숲길』에서 “언어는 구획된 성역, 다시 말해 존재의 집이다. 언어의 본질은 그것이 어떤 것을 뜻한다는 사실에서 모두 소진되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것은 단지 상징적인 어떤 것이나 암호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기에, 우리는 언제나 이 집을 통과함으로써 존재자에 이르게 된다”고 조언한다. 장애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언어 사용에 있어 세심하고 사려 깊어야 할 이유다.

출처 : 독서신문(http://www.reader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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